인천시 서구 청라경제자유구역 수변도시에 사는 김용성(34·가명)씨는 10월 첫날부터 긋는 황금 연휴가 설렘으로 다가온다. 9월10일부터 나흘 동안 이어졌던 연휴와는 전혀 다른 기운이다. 국내 최초의 인공 뱃길이 가져다 줄 색다른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의 집과 지근 거리인 인천시 서구 오류동에서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까지 천년을 꿈 꿔오던 물길, 경인아라뱃길 18㎞가 열린 것이었다. 연휴 첫날인 1일 아파트 베란다에 모셔뒀던 자전거를 꺼냈다. 10년 간 ‘된다, 안 된다.’ 논란의 중심에 서성거렸던 경인아라뱃길의 참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참이었다. 또 수자원공사나 국토해양부가 그토록 자랑거리로 내세웠던 자전거 도로에서 마니아인 자신이 누구보다도 먼저 페달을 돌리고 싶은 꿈틀거림에서였다.
인천터미널~김포터미널까지 왕복 43.1㎞구간에 3개 코스로 나눈 자전거 도로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고 팠던 용성 씨의 머릿속에서 인천앞바다를 배경삼아 펼쳐진 서해코스가 먼저 떠올랐다.
서해갑문에서 시천교에 이르는 서해코스 15.6㎞가 전해 줄 감흥이 자못 궁금했던 터라 그는 배낭을 메고 사뿐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서해갑문을 감싸 안은 환경교로 향했다. 길이 535m, 폭 34.5m의 6차로 교량 환경교 위에서 1만 톤급 강·바다 화물선이 들고나는 서해갑문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폭 28.5m, 길이 210m 규모의 갑실에다가 물을 가두는 20여 층 규모의 슬라이딩 게이트의 거대한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인천내항에서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을 경인아라뱃길에서 보았다는 뿌듯함에 그는 무릎을 쳤다. ‘요트와 수상레포츠, 해변카페 등 수향1경이 장래계획이지만 지금 이대로라도 입소문을 타면 오지 말래도 자전거 동호인들이 들끓겠는 걸…’
인천터미널 앞 수면에 15m 높이로 세운 섬마을 테마공원과 조형갯벌, 수경시설 등으로 꾸민 수향2경을 즐기는 것만 해도 그에게는 특별한 경험이다. 테마공원에는 간척사업 이전까지 갯벌이 지녔던 풍성함을 체험하는 해안길이 펼쳐있다. 조형갯벌에서는 선박의 파랑이 가져다주는 해양생태계의 변화도 읽을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오전 아니라 석양 노을이 질 무렵에 찾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싫지 않은 시행착오였다.
흔치 않은 풍광에 잠시 넋을 빼앗겼던 용성 씨는 시천교를 지나 귤현교로 향했다. 길이 11.6㎞의 계양코스였다. 절묘한 조화에 그의 가슴 저 밑바닥에서 감동이 치밀어 올랐다. 서해코스가 크고 웅장한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면 계양코스는 흡사 소담스럽고 아기자기한 어머니의 품이었다. 수향 3경인 시천교 워터프런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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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암과 백석 한들 지역을 연결하는 시천교 주변에 조성된 워터프런트에는 전망타워와 테마공원, 선착장, 야외 카페, 공연장, 가족물놀이장 등이 들어서 있다. 가족들과 가볍게 나들이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다랑이 논 지형의 야생화초가 하늘거리는 풍경에 홀린 채 용성 씨는 다시 페달을 밟는다. 그의 눈은 벌써 안개협곡에 꽂혀있다.
계양산과 경인아라뱃길이 만나는 절벽 골짜기에서 구름처럼 피어나는 물안개는 필시 무릉도원의 그것과 다름 없었다.
목상교 조금 못 미쳐 모습을 드러낸 원형 전망대와 인공폭포가 발길을 붙잡는다. 수향 4경이다. 절벽 끝에 걸쳐있는 원형전망대에서 인공폭포에 닿은 나부바닥 길에 용성 씨는 살짝 오금이 저려온다. 40m 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수 사이를 가로 지르는 탐방 길에 올라서니 일상의 묶은 때가 싹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뻥 뚫린 가슴은 새털인처럼 가벼워졌다.
다시 자전거에 오른 김씨는 14.1km의 김포코스로 접어든다. 그는 전통공원에 온듯한 착각에 빠진다. 뒤에는 김포평야, 앞은 물자리, 그 사이에 누각과 담장 등 우리의 옛 것들로 꾸며져 있다. 늘어진 가지로 누각 주위를 감싸고 있는 소나무들은 한국의 멋이 무언인 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수향 5경 만경원(귤현교 워터프런트)이다.
안동도 아닌 경인아라뱃길 만경원에서 선비의 멋을 훔친 그는 다시 수향 6경인 두물머리 공원으로 내달린다. 두물머리는 굴포천과 경인아라뱃길을 잇는 저류지. ‘홍수 때 넘치는 물을 가두는 저수지이니 그냥 그렇겠지’하며 별스럽지 않게 지레 짐작했던 김 씨는 두물머리 닿는 순간 아연실색했다. 그저 그런 공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20만㎡에 이르는 널찍한 하천변 저류지는 수생동식물이 만든 살아있는 박물관이었다. 관광객의 머리끝이 살짝 보일 듯 말듯 자란 갈대와 부들 사이로 난 탐방로에서 용성 씨는 나만의 호젓함에 취해 본다.
용성 씨의 자전거는 마지막 김포코스로 질주했다. 그곳은 호주나 유럽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김포터미널의 넓은 호수에는 유람선과 요트가 떠있고, 호수 한 가운데 분수가 물기둥을 높이 뿜어내고 있었다. 수향7경이다.
하늘로 고개를 추켜세운 김포공항의 비행기가 손에 잡힐 듯하고, 물 위에 떠 있는 유람선이 품에 안길 듯 가까이 있다.
물살을 가르며 스스르 멀어져 가는 유람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용성 씨, 그의 몸 안에서 짜릿한 경험을 갈구하는 욕망이 스멀거린다. ‘그래! 내친김에 연안 크루즈를 타고 인천 앞바다로 나가보는 거야.’ 김포터미널서 뜬 관광선 8척이 팔미도와 이작도, 덕적도까지 인천 앞바다를 돈다니 ‘잘됐다’ 싶었다.
그는 다음날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김포터미널에 닿았다. 마음 같아선 제주도행 여객선에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남은 연휴가 여의치 않은지라 인천 앞바다 섬을 도는 관광 유람선에 올랐다.
인천터미널을 빠져 나갈 쯤 인천시 서구의 유일한 섬 세어도(細於島)가 코앞에 다가왔다. 시내에 지척인 곳에 이런 앙증맞은 섬이 있는 지 여태껏 왜 몰랐을까? 용성 씨는 세어도에 내려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조성 중인 체험형 테마파크가 마무리 될 때를 기다리며 그만 생각을 접는다.
물 위를 미끄러지듯 영종대교와 인천대교를 밑을 지난 유람선이 팔미도에 접안한다. 한해 줄잡아 18만 명이 찾는 팔미도. 용성 씨는 그 이유를 감각적으로 흡수했다. 단지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세워진 장소의 역사성 때문이 아니었다. 팔미도에서 바라본 송도국제도시 등 인천시내의 절경은 숨이 멋을 듯 아름다웠다.
불꽃쇼와 마술쇼 등 연안 크루즈선 특설무대에서 펼쳐지는 이벤트와 선상 뷔페, 특별한 여흥을 즐기다보니 어느덧 유람선은 덕적군도 속으로 내달린다. ‘덕적 섬 무리를 두고 그 누가 그랬던가? 바다에 떠 있는 별과 같다고…’ 사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말이었다. 3·1운동의 숨결이 배여 있는 덕적(德積), 글방에서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던 문갑(文甲), 핵 폐기장의 아픔을 안고 있는 굴업(屈業), 바다 빛만큼이나 짙푸른 숲 빛을 이고 있는 울(鬱), 해적들의 소굴이었던 백아(白牙) 등 유인도들의 끝 모를 얘깃거리, 여기에다가 이룰 수 없는 친남매의 사랑 이야기가 서린 선단여 처럼 비경의 전설을 담고 있는 수많은 무인도… 용성 씨는 그곳에 눌러 앉고픈 심정이었다.
이작도는 또 어떤가? 기적이 따로 없었다. 날물 때 바다 한 가운데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모래 섬, ‘풀등’의 오묘함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대이작도 부아산 전설이 애틋해 용성 씨의 가슴이 찡해 온다. 이제 오나, 저제나 올라나? 배를 타고 떠난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고대하며, 아낙들이 아이(兒)를 업(負)고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산등성을 올라 닿았다는 부아산(負兒山)에서 용성 씨는 그때 그 아낙들의 애달음을 가슴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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